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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보다 아름다운 길 '조지훈문학길' 을 걷다

경상북도 영양군 외씨버선길 6구간

  • Editor. 장태동
  • 입력 2022.09.19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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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이 익고 열매가 영그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아름답다. 가을이면 개울물도 부풀어 오르고 산하의 풀 나무도 물든다. 공활한 하늘 따라 사람 마음 부푸는 것도 그 모든 가을의 하나 일뿐. 그런 마음으로 경상북도 영양군 시골길을 걸었다. 흥 오른 장터 왁자지껄 난장판에 생기가 돈다. 논 위로 불어가는 바람에 들녘이 일렁이고, 노루목고개 넘어 반변천 흐르는 마을, 물에 잠긴 돌다리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도 좋았다.

금촌산길 넘어 상원마을 산비탈 과수원에서 사과가 영글고 담 너머 골목까지 뻗은 대추나무 가지에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돌담 위에 올라간 닭은 경계도 없다. 여울물 소리에 마음이 녹록해질 때쯤 마을 동구를 신령처럼 지키고 있는 주실숲에 들었다. 영양장터부터 주실마을까지 13.5km 외씨버선길 6구간 조지훈문학길,  이 길이 가을 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영그는 모든 생명을 보듬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삼지리 풍경
삼지리 풍경

#걷기코스 간략 소개

영양전통시장 – 삼지1리 – 삼지2리 - 노루목재 – 상원논두들마을(지름길인 냇물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고, 돌다리가 물에 잠기면 돌아가는 길도 있음) - 상원교 - 상원3리 – 금촌산길 - 곡강교 - 일월삼거리 – 영양 향교 – 수로길(물이 넘질 때 돌아가는 길 있음) - 주실마을

 

●장 구경에 해는 기울고


바람이 분다. 장거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문어 파는 아줌마와 장흥정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구성지게 담겼다.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문어 파는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깎았는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손에는 문어 봉지가 들려있었다. 고등어 파는 총각 목소리는 아까부터 우렁차다. 고등어 사라는 소리는 한 마디 없이 유모차에 탄 애기가 이쁘다는 둥, 머리 하얀 할머니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게 다 고등어를 잡숴서 그렇다는 둥, 파란 하늘이 오늘 따라 더 파랗다는 둥, 장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에 신났다. 과자 좌판 옆에 할머니 몇 분이 앉아 시식용 과자 맛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과자 장사는 시식용 접시에 과자가 비어가면 과자를 또 얹는다. 식당 마다 가득했던 사람들이 장거리로 나와 장구경이다. 볕이 엷어진다. 장거리 천막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영양 5일장은 매 4일과 9일에 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영양을 찾은 날이 영양 5일 장이 서는 날이었다. 무거워진 햇볕이 장거리에 게으르게 비낀다. 장도 시들해진다. 내일 걸을 길을 정리하러 장터 주막에 앉았다. 

삼지리 들녘
삼지리 들녘

●일렁이는 논과 소나무길이 인상적인 삼지리


영양전통시장에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삼지리 마을로 들어가는 통로는 짧은 숲길이다. 숲길을 벗어나면 삼지리 마을이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 세 개의 연못이 있다. 그 곳에 수변공원을 만들었다. 


넓은 들녘을 가득 메운 벼가 고개를 숙였다. 건들바람에 들녘이 일렁인다. 논 사잇길로 걷는다. 밭에서 비닐을 걷던 아저씨와 인사를 나눈다. 이 가을 땅에서 영그는 모든 생명들은 누군가 보듬어주었던 손길 덕이다. 무엇인가 수확을 마친 텅 빈 밭을 서성이는 아저씨를 그저 바라보았다. 

삼지2리 소나무길
삼지2리 소나무길
삼지2리 습지에 있는 거대한 고목
삼지2리 습지에 있는 거대한 고목

삼지2리는 소나무길이 인상적이다. 마을길 가로수가 소나무다.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제법 굵고 큰 소나무들이 구불구불 가지를 펼치며 자랐다. 멀리서 한눈에 보고 그 길을 걸었다. 길옆 습지에 커다란 고목이 있다. 정확한 수종은 모르겠으나 멀리서 보기에 느티나무 같았다. 느티나무는 둥그스름하게 퍼져 자라는 게 보통인데, 이 나무는 세모지다. 줄기에서 뻗은 굵은 가지 한쪽이 고사했다. 살아있는 가지만 잎을 피웠다. 죽은 가지는 잎을 피우지 못하고 공중에 화석처럼 남았다. 
 

노루목재
노루목재

 ●노루목재 넘어 금촌산길까지


노루목재를 넘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산고갯길이다. 고개를 넘어 걷는 길, 산비탈 과수원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장터 진열대에 놓인 사과가 아니다. 나뭇가지에 달린 사과는 생기 넘친다. 나무의 결실, 꽃이 피면서부터 열매가 영그는 그 모든 순간이 절정이었으며, 그 총화가 나뭇가지에 달린 저 사과다. 그렇게 곡식이 익고 열매가 영그는 가을은 그래서 아름답다. 

노루목재 넘어 산비탈밭 사과나무가 있는 길을 걷는다.
노루목재 넘어 산비탈밭 사과나무가 있는 길을 걷는다.

상원논두들마을 안내판에 돌다리를 건너는 지름길과 돌아가는 길이 표시됐다. 냇가로 향했다. 물이 불어 돌다리가 잠겼다. 물가를 서성거렸다. 켜켜이 쌓인 바위 절벽에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산을 이루었다. 그 산모퉁이를 굽이돌아 냇물은 흐른다. 수심이 낮은 곳에 놓인 돌다리가 물에 잠겨 여울을 만들었다. 풀냄새 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아예 잠긴 돌다리를 건널 수 없었지만, 그 풍경이 서성이게 만든 것이다.

상원교에서 본 풍경
상원교에서 본 풍경

이정표로 다시 돌아와 돌아가는 길로 걷는다. 상원교에 잠시 멈춘 이유도 냇물이 만든 풍경 때문이었다. 냇가에 가득 피어난 물풀 사이 여울을 지나는 물길을 거슬러 멀리 바라보았다. 냇물에서 솟은 수직 바위절벽, 절벽을 뒤덮은 푸른 나무들. 상원 마을을 지나 도로를 걷다가 금촌산길로 접어들었다. 

●금촌산길에서 주실마을 전까지


평범한 산길을 지나 마을로 내려선다. 담장 넘어 가지를 내민 대추나무에 가지가 무거워보일 정도로 대추가 달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밭 울타리 지지대 끝에 앉은 잠자리는 카메라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도 날아가지 않는다. 곡강교 아래를 흐르는 여울물소리에 배가 고파졌다. 

금촌산길
금촌산길

일월삼거리는 주막거리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주막 하나 쯤 있었을 법했다. 그곳에 있는 식당에 들러 먼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청국장을 해달라고 했다. 청국장도 이 무렵이 제철이다. 막걸리도 청국장도 옛날 이맘때 시골 고향에서 먹던 진하고 구수한 그 맛이다. 주인아줌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부터 이곳에 식당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줌마가 알지 못하는 더 오랜 옛날에는 아마도 주막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야기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이자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지어졌다는 영양 향교보다는 그 마을 어느 집앞 길에 앉아 빨간 고추를 다듬는 아주머니들의 일상이 더 높아보였다. 고추가 좋아 보였다. 매년 김장을 담그는 집안 내력에 그 자리에서 고추값을 흥정했다. 다른 곳의 올 시세가 어떻게 매겨질지 몰라 일단 대충의 가격대만 흥정하고 전화번호를 받기만 했다. 

이곡마을 풍경
이곡마을 풍경

향교를 지나면 길은 이곡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도랑 위로 대추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장작불 때는 향기가 마을에 자욱하다. 텃밭에 고추가 빨갛게 익고 돌담 위에 올라간 닭은 경계도 없다. 고향 마을 같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도착지점인 주실마을까지는 한 2km 남짓 남았다. 

길에서 다리를 건너 주실마을로 들어오다 돌아본 풍경. 물 건너 숲이 주실숲이다.

●주실마을


마을 동구를 신령처럼 지키고 있는 주실숲으로 들어선다. 100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만든 숲이다. 마을 뒷산 자락이 잦아드는 곳부터 나무를 심어 자연스럽게 숲이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주실숲에 조지훈 시인의 시비가 있다. 

주실마을 주실숲에 있는 조지훈 시비
주실마을 주실숲에 있는 조지훈 시비

주실마을은 시인 조지훈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마을이 들어앉은 형국이 ‘배산임수 문전옥답’의 전형이다. 마을 뒤에 산이 있고 마을 앞에 논이 펼쳐졌으며, 논 앞에 개울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마을로 드나들 수 없다. 주실숲 옆에 있는 다리가 마을로 드나드는 다리 중 하나다. 

주실마을
주실마을

마을 대부분의 집이 한옥 기와집이다. 마을을 한 눈에 보려면 마을 앞 개울가 어디쯤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렁이는 논과 물결처럼 이어지는 한옥의 선들, 산줄기가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을 얼마나 푸근하게 하는 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주실마을에 있는 지훈문학관
주실마을에 있는 지훈문학관
지훈문학관에 있는 조지훈 시인의 육필 원고
지훈문학관에 있는 조지훈 시인의 육필 원고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월록서당 등 오래된 한옥도 남아있다. 한옥 골목을 다니다 지훈시공원을 찾았다. 마을 위 산기슭에 있는 공원에서 시비와 조형물을 보고 지훈문학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
주실마을 지훈시공원에 있는 시비와 조형물
주실마을 지훈시공원에 있는 시비와 조형물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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