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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인의 얼이 잠든 곳, 앙카라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2.08.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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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느트카비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로마 목욕탕 유적지
아느트카비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로마 목욕탕 유적지

ANKARA


튀르키예의 문화를 엿보고자 할 때 아느트카비르(Anıtkabir)를 지나친다는 건 앙카라에서 할 수 있는 최고로 우둔한 짓이다. 튀르키예인들의 얼이랄까, 정신 같은 것이 집약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기엔 ‘그’가 잠들어 있다. 그가 누군지 밝히기 전, 그의 인기부터 실감해 보자. 

로마 목욕탕 유적지

우선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그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정도로 길거리나 식당, 관공서, 학교 할 것 없이 어디든 그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도시 중심가엔 늘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심지어 모든 튀르키예 화폐 앞면에도 그의 얼굴이 있다. 그의 이름을 못 들어 보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도시에서 가장 큰 대로엔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붙고, 이스탄불 제1공항이었던 공항의 이름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전 국민의 전폭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현대 튀르키예의 국부. 그의 정체는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다. 

아타튀르크 대통령 모형. 기품과 품위가 그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아타튀르크 대통령 모형. 기품과 품위가 그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튀르키예 사람들한테 아타튀르크 대통령이요? 한국으로 따지면 ‘세종대왕+이순신 장군+백범 김구 선생’이라고 보시면 돼요. 복잡한 아랍 문자 대신 새 문자를 도입해 문자 개혁을 이뤄 냈고, 갈리폴리 전투*등에서 외세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셨죠. 오스만 제국의 패배 이후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독립전쟁을 주도하셨고요. 지금의 튀르키예를 있게 해준 민족 영웅이세요.” 98%의 팩트와 2%의 사심이 섞인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업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강력한 정교분리, 세속주의 정책을 펼치며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성교육과 근대교육에도 힘썼다. 그 영향으로 튀르키예는 지금까지도 이슬람권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히잡 착용은 개인의 선택, 음주도 물론 가능하단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해 벌인 전투.

유치원생부터 대학 졸업생까지 앙카라 학생들의 필수 코스, 아느트카비르
유치원생부터 대학 졸업생까지 앙카라 학생들의 필수 코스, 아느트카비르

아느트카비르는 그런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튀르키예에 방문하는 귀빈들은 반드시 한 번씩 이곳을 거친다. 유치원 소풍, 대학교 졸업식, 가족 나들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튀르키예인들도 이곳을 거친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은 이른 오후면 전부 동이 난다(연예인 굿즈 뺨치는 인기다). 아타튀르크 대통령을 향한 튀르키예인들의 감정은 거의 무조건적인 존경과 경외에 가깝다. 그는 튀르키예인의 아버지이자 튀르키예의 얼이고, 정신이고, 문화다.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 말을 한 번 더 반복할 수 있다. 튀르키예의 문화를 엿보고자 할 때 아느트카비르를 지나친다는 건 앙카라에서 할 수 있는 최고로 우둔한 짓이다.

음악을 위한 공간,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음악을 위한 공간,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경유지, 그 너머의 가치


앙카라 지도를 펼치고 압정으로 갤러리와 박물관을 표시하면 지도는 ‘압정 밭’이 되어 버릴 거다. 그만큼 빼곡하다. 컬처 루트 페스티벌이 열리기엔 이만한 적임지도 없겠다 싶을 만큼. 이스탄불에 베이욜루 컬처 루트가 있었다면, 앙카라엔 ‘앙카라 컬처 루트(Ankara Culture Route)’가 있다. 루트는 앙카라의 중심지인 울루스(Ulus) 지역 안팎으로 4.7km 가량 이어져 있는데, 이번 축제에서만 1,500명의 예술가들이 댄스 공연, 전시회, 영화 상영 등 300개 이상의 이벤트를 펼쳤다.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단순히 숫자로만 승부 보지 않는다. 앙카라의 예술 스폿들이 보여 주는 높은 퀄리티의 전시는 숫자 그 이상으로 놀랍다. 국제 여성 섬유 예술가 그룹의 전시, 스티브 맥커리 사진전, 코로나를 주제로 한 회화전 등은 특히 압권이었다. 이 전시들은 ‘여성’, ‘생명’, ‘죽음’, ‘순간’ 등의 키워드로 세계의 여러 인식의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히는 데 성공했다.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2020년에 개관한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CSO Hall)은 또 어떤가. 완공에만 꼬박 23년이 걸린 콘서트홀은 음표와 노랫말로 가득차 출렁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매일 다채롭게 쏟아졌던 공연들은 그렇지 않아도 더운 앙카라의 여름밤을 식혀 주긴커녕 더 뜨겁게 달궜다. 콘서트홀은 튀르키예가 문화 예술의 거점지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워졌다는데, 공연을 즐기다 보면 그날이 머지 않았겠단 생각이 절로 든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엔 구석기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엔 구석기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민족학 박물관은 올해 5월 리모델링을 마쳐 새 모습을 선보였고,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과 앙카라 성 일대의 성채길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됐다. 이제 앙카라 앞에 붙을 ‘예술 도시’란 수식어는 더 이상 과분한 타이틀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등을 구경할 수 있는 공화국 박물관
대통령 집무실 등을 구경할 수 있는 공화국 박물관

안타까운 건 이 사실을 아는 여행객이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다. 냉정히 말하면 앙카라는 호주의 캔버라, 캐나다의 오타와 급으로 인지도 낮은 수도 중 하나다. 서쪽엔 이스탄불, 동쪽으론 카파도키아가 있으니 유명 여행지들의 그늘에 가려 단순 경유지쯤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앙카라에도 이토록 뜨거운 ‘예술 신세계’가 꿈틀거리며 부화를 시작하고 있다. 날개를 펼 앙카라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 경유지 너머의 가치가 그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의 예술


예술은 도시를 재생시키는 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매개체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이 예술을 통해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예술이 결코 만만하거나 간편한 방법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가장 공평한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여성 섬유 예술가 그룹의 전시

돌이켜 보면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열린 이번 축제에선 ‘하마터면’이란 부사가 졸졸 따라다녔다. 하마터면 지나칠 뻔하고, 하마터면 못 볼 뻔하고, 하마터면 놓칠 뻔하고…. 걷는 내내 온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워야 했다. 평범한 쇼핑몰인 줄만 알았던 건물 꼭대기 층에선 사진전이 한창이었고, 폐헌가 공장 터인가 싶으면 어김없이 갤러리였다. 노출 콘크리트에 무심히 작품이 걸려 있고 까끌한 바닥에 조각품이 놓여 있는 식이었다. 그중에선 입장료가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항구 근처에선 무료 오케스트라 공연이 수시로 열렸다. 바꿔 말하면 예술이 어디에나 있었단 얘기다. 

오스만 제국 말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선보이는 앙카라 주립 회화 조각 박물관
오스만 제국 말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선보이는 앙카라 주립 회화 조각 박물관

튀르키예에서 예술은 저 높은 고매한 곳 어딘가로부터 끌어져 내려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열린 장소에서 자신을 과감히 드러냈다. 문턱을 낮추고 ‘모두의 예술’이 되어 서민들에게까지 닿았다. 예술적 감수성이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등한 것이었다. 마치 만인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자연처럼. 그 공평함 안에서 어떤 마을은 폐허에서 예술촌으로 변모하고, 어떤 도시는 변두리에서 중심지로 거듭났다. 도시를 살리고,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더욱 낮은 곳으로 옮겨져 멀리멀리 가 닿으며, 그렇게 예술은 이윽고 한 번 더 예술다워졌다. 진정한 예술의 기능은 그런 데에 있었다.

앙카라 성
앙카라 성

그러니 믿을 수밖에. 단순히 ‘예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삶과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술이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삶은 분명 다를 거라고.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이들이 튀르키예라는 신세계를 만들고 있는 거라고.  

앙카라 성
앙카라 성

▶AIRLINE 
안전한 비행의 시작 

코로나 이후, 터키항공의 키워드는 ‘안전’이 됐다. 체크인을 비대면으로 실시하고 마스크, 손소독제 등이 포함된 방역 위생 키트를 제공하는 등 승객들의 안전을 꼼꼼히 살핀다. 방역 전문 승무원도 모든 항공편에 한 명씩 상시 탑승한다. 현재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노선을 주 6회 운항하고 있다. 한편, 2018년 10월에 개장한 이스탄불 신공항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8년에 최종 완공되는데, 무려 인천공항의 3.5배 크기의 세계 최대 규모의 공항이 될 거라고. 면세점은 이미 지금도 스케일이 굉장하다(진짜 끝이 안 보인다). 그러니 이스탄불에서 인천으로 귀국할 땐 반드시 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하자. 두 손은 가볍게, 지갑은 빵빵하게 준비해 두는 게 ‘안전’하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터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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