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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풍류가객, 멈추면 음유시인이 되는 풍경 속으로!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함양군 선비문화탐방로 1코스를 걷다

  • Editor. 장태동
  • 입력 2022.06.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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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정
동호정

6km 계곡 길, 6개의 옛 정자들

물경 걸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계곡길이 있다. 비범해서 저절로 걸음이 멈춰지는, 그리고 너무나 평범해서 살갑고 널널한, 풍경까지. 풍류가객의 마음으로 걷고 음유시인이 되어 멈추어 오래 바라보고 싶은 풍경들. 경남 함양군 화림동 계곡 중 서하면 봉전마을 군자정에서 안의면 농월정까지 약 6km 계곡길, 그 길에 함양군 선비문화탐방로(1코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6개의 정자도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이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군자정
군자정

●계곡을 가득 메운 구름 같은 기암괴석, 그 위에 올려진 거연정 


군자정, 거연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화림동 계곡 선비문화탐방로 1코스를 걸으면 만날 수 있는 6개의 옛 정자들이다. 출발지점은 군자정이다. 


군자정은 조선시대 사람 정여창과 연관 있는 곳이다. 안음 현감이 되어 고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조세정책을 새롭게 하여 선정을 베푼 인물이 정여창이다. 당시 사람들은 정여창을 해동의 군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음이 지금의 함양군 지역이다. 군자정은 정여창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거연정
거연정

군자정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거연정을 찾아간다. 구름 같은 기암괴석들이 계곡에 가득하다. 너럭바위 안반바위가 넓게 퍼졌다. 치솟아 오르다 꺾여 직하하고, 파이고 뒤틀린 바위와 바위 사이로 계곡물은 흘렀다 고이고 또 넘쳐흐른다. 그 풍경 위에 세워진 정자가 거연정이다. 기암괴석 안반바위가 정자를 품은 듯 보이다가도 생각을 달리하면 정자를 지은 사람들의 뜻이 정자에서 무수한 기암괴석으로 흘러 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정자 이름인 거연(居然)은 평안하고 고요한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화림재 전시서의 7대손이 거연정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거연정 주변 풍경
거연정 주변 풍경

봉전교 부근에서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데크길로 접어든다. 계곡 옆 숲길이다. 숲을 벗어나면 농부들의 땀이 밴 밭이 나오고, 길은 이내 다시 계곡 옆 숲길로 들어간다. 여름 열기에 익은 물비린내가 바람에 실려 숲으로 들어 풋풋한 숲 향기와 어우러진다. 이맘때 시골 자연의 향기다.

동호정으로 가는 길. 그냥 평범한 시골 풍경에 추억 속 고향 시골마을이 생각났다.
동호정으로 가는 길. 그냥 평범한 시골 풍경에 추억 속 고향 시골마을이 생각났다.

●계곡에 텀벙 뛰어들어 천렵을 즐기는 아버지와 아이들  


동호정이 0.9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멀리 보이는, 개울을 건너는 낮은 다리가 순하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햇볕에 마른 돼지풀 냄새와 섞여 파란 하늘로 퍼진다. 하늘로 삐죽 솟은 미루나무 한 그루에 옛날에 부르던 동요가 생각났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농촌 시골 마을이면 어디나 있을법한 그냥 평범한 개울 풍경이 꼭꼭 닫혔던 마음 속 추억의 방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걷는 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계곡 물과 너럭바위가 보인다. 물 건너편에 정자가 하나 있다. 동호정이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 임금을 도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이 지은 정자다. 

동호정. 물에 하늘과 구름과 숲과 정자가 비친다.
동호정. 물에 하늘과 구름과 숲과 정자가 비친다.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정자가 잔잔한 수면에 비쳐 더 고즈넉하다. 간혹 정자 앞 너럭바위를 지나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도 있다. 물에 비친 하늘에 그들의 모습도 비친다. 

호성마을 개울과 염소가 노는 풀밭 풍경
호성마을 개울과 염소가 노는 풀밭 풍경

동호정을 지나면 호성마을이다. 개울가 풀밭에서 염소 한 마리가 논다. 간혹 부는 바람에 풀이 눕고 염소는 ‘메에에에 메에에’ 노래한다. 아주머니 한 분이 개울에서 허리 굽혀 무엇인가 줍는다. 올갱이를 잡는 것이다. 다슬기가 표준말인데, 다슬기라고 하면 왠지 생명 없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어감도 올갱이가 입에 더 착착 감긴다.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두 아이가 어른과 함께 개울에 들어가 텀벙거리며 논다. 아버지와 아이들 같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거센 물살에 작은 아이가 휘청거리니까 큰 아이가 부축하며 안는다. 반도를 어깨에 걸친 큰 아이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연신 반도질을 하던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른다. 허탕만 치다가 물고기를 잡았나보다. 

호성마을 개울. 바위와 바위 사이 골로 개울물이 세차게 흐른다.
호성마을 개울. 바위와 바위 사이 골로 개울물이 세차게 흐른다.

올갱이를 줍던 아줌마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아버지와 아이들은 아마도 한 가족일 것이다. 그들 가족의 저녁 밥상에는 구수한 된장을 푼 올갱이국과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 요리가 올라가겠지. 여름 개울의 한때가 밥상에 올라, 온 가족이 무릎을 맞대고 웃고 떠들며 밥을 먹는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 


어른이 돼서, 지치고 힘들 때 돌아보면 언제나 위로가 되는 시골 고향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걷는다. 

경모정에서 람천정으로 가는 길. 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간다.
경모정에서 람천정으로 가는 길. 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간다.

●농월정, 그 요란한 풍경에서 ‘거연’을 생각하다


호성마을을 지나면 경모정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배현경의 후손이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이곳에 터를 잡고 후학을 가르치던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가 경모정이다.  

람천정에 올라 개울을 바라보았다.
람천정에 올라 개울을 바라보았다.

경모정을 지나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람천정이 나온다. 정자에 올라 개울을 본다. 너럭바위 사이로 물이 흐른다. 개울에 놓인 낮은 다리를 건넌다. 멀리 황석산 기슭에 기와집이 보인다. 황암사다. 

람천정을 지나 농월정으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 황석산 기슭 푸른 숲에 안긴 황암사가 보인다.
황암사

황암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사람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자료에 따르면 1597년 왜군 2만7천명이 황석산성을 3일 동안 공격했다. 안의 현감 곽준, 함양군수 조종도, 그리고 거창, 초계, 합천, 삼가, 함양, 산청, 안의에 사는 사람들이 관군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으나 음력 8월18일에 황석산성은 함락됐다. 숙종 임금 때 이곳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사당을 헐고 추모제도 금지했다. 2001년 사당을 복원했다. 

농월정 주변 계곡. 물 건너편에 농월정이 보인다.
농월정 주변 계곡. 물 건너편에 농월정이 보인다.

이제 도착지점인 농월정으로 향한다. 농월정은 조선시대 지족당 박명부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37년에 지은 정자다. 몇 번 다시 지었고, 2003년에 불에 타서 다시 지었다. 

계곡에 우뚝 선 바위 뒤로 농월정이 보인다.
계곡에 우뚝 선 바위 뒤로 농월정이 보인다.

농월정 주변 계곡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계곡 바닥과 산의 바위절벽이 하나다. 계곡 전체가 하나의 바위이고 그곳에서 바위절벽이 솟아난 형국이다. 너럭바위나 안반바위라는 말에 그 풍경을 담기 부족하다. 계곡 전체와 계곡에서 일어선 산의 절벽이 하나의 바위다. 오랜 세월 물살과 바람에 깎이고 부서지며 골이 파이고 연마되어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듬어진 골 사이로 물이 고였다 흐른다. 그 계곡 바위 어디쯤 앉았다. 거연, 평온하고 조용한 경지를 또  생각해본다. 이곳까지 걸어온 그 첫발자국처럼.    

농월정 주변 계곡 바위에 화림동이란 글씨가 새겨졌다.
농월정 주변 계곡 바위에 화림동이란 글씨가 새겨졌다.

 

글·사진 장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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