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북한산 3대 사찰을 찾아서

  • Editor. 이진경
  • 입력 2022.02.07 10:09
  • 수정 2022.02.07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산과 인근 자락에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북한산 3대 사찰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진관사, 흥국사, 삼천사가 그곳이다. 

 

●마음의 정원
진관사


‘서쪽은 진관사(西津寬)’라고 해 예로부터 서울 근교 4대 명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고려 제8대 현종 원년인 1010년 창건됐다. 현종이 세자였을 당시 목숨을 구해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진관사는 6.25 전쟁 때 나한전, 칠성각, 독성전의 3동만 남고 모두 소실됐으나 1963년 주지로 부임한 비구니 최진관 스님의 노력으로 점차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 비구니 도량 진관사는 사찰 음식,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진관사 여정은 ‘삼각산진관사’ 일주문을 지나며 시작된다. 곧 ‘종교를 넘어’ ‘마음의 정원’ 등의 글귀를 걸어 놓은 길이 펼쳐진다. 진관사는 종교와 인종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마음의 정원'을 지향한다. 이 길은 '백초월길'이라는 명예도로명 또한 지녔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스님을 기리는 의미다.

지난 2009년 진관사에서는 칠성각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일장기 위에 먹으로 그린 태극기와 조선독립신문 제32·40호, 신대한 제2·3호, 자유신종보 등이 발견됐다. 태극기와 독립신문은 초월스님이 일경에 체포되기 전 급히 숨겨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길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해탈문에 이른다. 곧 이어 펼쳐지는 송림은, 그야말로 정갈하다. 언제 어느 때에 찾아도 바지런한 손길이 금세 닿은 것처럼 가꿔 놓았다. 편견이겠으나 찾아 본 비구니 도량은 하나 같이 정갈했다. 공주 동학사도, 청도 운문사도 그랬다. 

대웅전, 명부전, 독성전, 칠성각 등 사찰 주요 건물은 홍제루 너머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알맞은 크기다. 진관사가 자랑하는 사찰 음식은 ‘산사음식연구소’에서 맛볼 수 있다. 개인은 안 되고, 단체 신청만 받으니 사찰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진관사 음식을 맛봤다는 지인은 “그때 분명히 배불리 먹었는데 좀 더 먹어둘 걸”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괜히 더 먹어보고 싶다. 다원에서 차 한잔 하거나 국산 팥으로 쑤는 단팥죽을 맛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주소: 서울 은평구 진관길 73
 

●북한산을 조망하는 약사도량
흥국사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등 북한산 봉우리를 조망하고 선 사찰이다. 노고산으로 불리는 한미산 자락에 자리했다.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인 661년 원효대사가 흥성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조선의 임금 영조가 어머니가 잠든 소령원에 능침을 가던 중 머물렀다가 흥국사로 이름을 바꾸게 하고 약사전의 친필 편액을 하사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불이문을 통과하게 된다. 불이문은 사찰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 '번뇌와 해탈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흥국사 불이문 현판의 반대쪽에는 해탈문이라고 적혀 있다. 해탈은 '인간의 속세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라는 뜻. 흥국사로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 상태는 이처럼 달라지나 보다. 

불이문을 통과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대방이다. 흥국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자 설법전이며,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어 미타전으로도 불린다. 불당 안에 모신 아미타여래 좌상은 자그마한 몸집을 하고 있다. 결가부좌를 틀고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양 무릎에 얹었다. 약간 아래로 향한 시선에서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아미타불은 중생이 임종을 맞아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극락세계로 이끄는 힘을 가졌다 한다. 불상 뒤에는 극락세계를 9등분해 묘사한 극락 구품도가 걸려 있다. 이 탱화는 김홍도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흥국사의 본전은 약사전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불당의 약사여래불은 원효대사가 모셨다고 한다. 약사전 후불탱화는 영조의 손주인 정조 당시 제작됐다. 할아버지가 쓴 편액이 걸린 불당 안에 손주의 정성이 더해진 셈이다. 약사전 뒤쪽에는 전망대가 자리했다. 몇 계단 오르는 수고를 통해 북한산 봉우리와 어우러진 흥국사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주소: 경기 고양시 덕양구 흥국사길 82
 

●영험하기로 소문난 마애여래입상
삼천사


삼천리골입구교차로에서 구불구불하고 바닥이 엉망인 1.4km의 길을 올라 만날 수 있는 사찰이다. 북한산 3대 사찰로 알려진 진관사, 흥국사에 비하면 정갈한 맛은 한참 떨어진다. 삼천사는 원효대사가 흥국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이후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서 1027년 삼천사, 장의사, 청연사 승려들이 쌀 360여 석으로 술을 빚은 것이 발각돼 벌을 받았다고 기록한 것으로 봐 천년고찰임에는 틀림없다. 

삼천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1970년대다. 1979년 마애여래입상이 보물로 지정되며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연화대좌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을 부조한 마애여래입상은 보물이 되기 전부터 영험하기로 알려졌다. 석불에 기도를 드리면 아기를 점지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마애여래입상의 높이는 약 3m이며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입상 뒤쪽은 2층 구조의 산령각이다. 1층은 나한전인데 나한(羅漢)이 아닌 나한(拏漢)이라 적어 놓아 특이하고 이상하다. 아무튼 나한전에는 500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다. 정확히 500분인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모든 나한의 표정과 자세가 달라 재미있다. 

주소: 서울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글·사진 이진경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