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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호시절, 꽃 같은 무희의 춤

다이내믹 캄보디아, 찬란했던 크메르 왕국의 한 조각

  • Editor. 차민경
  • 입력 2021.11.05 10:08
  • 수정 2021.12.2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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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왕국의 역사 유적 ⓒpixabay
크메르 왕국의 역사 유적 ⓒpixabay

지금의 캄보디아를 만든 건 크메르 왕국(Khmer Empire)이다. 캄보디아의 상징적 존재로 통하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를 축조한 시대이자,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누빈 시대다. 캄보디아 예술, 문화, 건축 양식에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나고, 관세음보살 신앙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찬란했던 캄보디아 역사의 한 조각. 크메르 왕국은 지금까지도 캄보디아에 숱한 흔적을 남긴 채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백신 접종 완료자를 대상으로 11월30일부터 휴양지인 시아누크빌과 코롱섬, 내년 1월부터 씨엠립을 격리없이 개방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에서 최소 5일 머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느리지만 한 발짝, 한 발짝 캄보디아에 다가서고 있다.

Angkor Wat ⓒ한-아세안센터
Angkor Wat ⓒ한-아세안센터

●캄보디아 최초의 국가, 푸난 시대


1세기경 지금의 캄보디아의 땅에, 최초의 국가인 푸난(Funan)이 세워진다. 6세기까지 존재했으며 메콩강의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토양을 이용해 농경사회로 성장했다. 당시 푸난은 발달된 항해술을 바탕으로 인도 왕국과 중국을 잇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해상무역이 발전하게 되었고, 말레이 반도에 이르는 영역까지 넓은 영토를 장악하게 됐다.

6세기 말부터 메콩 상류에 위치해있던 첸라(Chenla)가 점차 성장하며 푸난을 압박하며 7세기경 첸라 시대를 연다. 기록에 따르면 자야바르만 1세가 사망 후 후계자가 없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분열됐다. 그렇게 첸라 왕국은 자바(JAVA)에 위치한 샤일렌드라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당시 자야바르만 2세는 샤일렌드라 왕국에 볼모로 잡혀가 성장기를 보내게 되는데,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앙코르 왕국 시대를 열게 된다.

앙코르와트 ⓒshutterstock
앙코르와트 ⓒshutterstock

 

●캄보디아를 꽃 피운 크메르 왕국


앙코르 왕국의 시대는 크메르 왕국이라고 불린다. 바로 이때 앙코르 와트를 축조하는 절정기를 거치게 된다. 샤일렌드 왕국(Shailendra Dynasty)에서 불모로 잡혀 성장기를 보낸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VII)는 힌두교의 사상을 기초로 스스로를 신왕이라 칭한다. 그후 야소와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정했고 수리야와르만 2세가 왕국을 재통일하며 앙코르 왕조의 최전성기를 구축하게 된다.

그는 국토를 크게 확장시키기 시작했으며 크메르 문명의 상징인 앙코르 와트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무려 300년이 넘게 건축은 계속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예술 양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종교 의식은 힌두교에서 점차 관세음보살 신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이욘 사원 ⓒshutterstock
바이욘 사원 ⓒshutterstock

 

●앙코르 와트가 밀림 속으로 사라진 사연


당시 대승불교를 국교로 삼게 되며 바이욘(Bayon) 사원을 추가로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앙코르톰도 조영했다. 당시 앙코르 왕국의 규모는 인도차이나반도를 석권하는, 캄보디아 역사상 최대 제국을 구축했다. 600여 년 지속된 앙코르 왕국의 행복은 지금의 태국인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의 침략으로 15세기에 막을 내리게 된다. 멸망 후 앙코르 와트는 밀림 속 버려진 채 오래도록 잊힌 상태로 남겨졌는데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순례지 중 하나가 됐다.

앙코르 와트에 새겨진 압사라 부조 ⓒpixabay
앙코르 와트에 새겨진 압사라 부조 ⓒpixabay

 

●무희의 춤사위에 새겨진 의미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희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각기 다른 춤사위를 한 ‘압사라’의 부조 약 1,800여 개가 유적지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압사라(Apsara)는 힌두 신화 속 여신의 이름으로, ‘물 위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졌다. 신이 불로장수를 위해 천 년 동안 우유바다를 휘저을 때 압사라가 태어났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시 크메르인의 미의식 또한 결합되어 있는데, 잘록한 거리와 풍만한 가슴, 길고 나긋한 눈매가 그렇다. 화려한 머리장식과 목장식, 탄탄한 직물로 만든 치마 등 섬세한 표현 또한 인상적이다. 압사라 조각은 옷차림새나 손짓, 발짓 등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 부조의 움직임을 모으면 하나의 춤사위가 되는데, 실제로 앙코르 와트 벽면의 압사라 부조를 찍어 압사라 댄스를 복원하는 데 사용했다.

압사라의 우아한 춤사위 ⓒshutterstock
압사라의 우아한 춤사위 ⓒshutterstock

 

●힌두 신화 속 캄보디아 왕실 발레


캄보디아에서 압사라가 특별한 것은, 캄보디아 크메르족의 전통 무용으로 의미가 한 단계 더 확장됐기 때문이다. 천상의 무희, 춤추는 여신인 압사라가 힌두 신화 속 이야기를 춤을 통해 풀어낸다. 압사라 댄스는 크메르 왕국 시절 번영을 이뤘고, 주로 왕실 의식이나 대관식 등에 행해지면서 캄보디아 왕실 발레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압사라 댄스 레퍼토리에는 네 가지 등장인물이 있다. 여자, 남자, 거인, 원숭이로 각자 특징을 형상화한 독특한 메이크업과 장신구를 걸친다. 원숭이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원숭이 영웅 하누만(Hanuman)을 형상화한 한 것으로, 하누만과 압사라를 중심으로 힌두 신화 속 이야기를 풀어간다.

 

글 차민경 트래비 객원기자 
자료 제공: 트래비 (Travie), 메콩 연구소, 한-메콩 협력기금 (Mekong Institute, Mekong-ROK Cooperation Fund), 한-아세안센터 (ASEAN-Korea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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